개나리 물든 산길을 따라, 봄의 마음을 걷다
아침부터 햇살이 유난히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따뜻하다는 표현보단, 살결에 닿는 봄바람이 간지럽다 할 만큼 산뜻했다.
문득, 오늘은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히 목적지나 계획은 없었다.
그냥 마음 가는 대로, 몸이 이끄는 대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산 입구에 도착해 있었다.
초입부터 알알이 피어난 개나리가 가장 먼저 나를 반겨줬다.
노란색의 작은 꽃잎들이 마치 “어서 오세요”라고 손을 흔드는 것 같았다.
그 풍경 하나만으로도 이미 마음은 들떠 있었고, 오늘 산행은 분명히 특별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산을 오르기 시작하자, 몸은 살짝 긴장감을 가졌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한없이 가벼웠다.
무겁고 바쁘게 흘러가던 일상의 감정들이 어느샌가 옅은 안개처럼 흩어지고, 그 자리에 말간 여백이 자리 잡았다.
그 여백 위로 부드럽게 스며드는 건 봄의 냄새였다.
땅에서 올라오는 흙냄새, 나무 사이사이로 스치는 바람의 온기, 그리고 군데군데 피어난 개나리 향기까지.
개나리 피는 봄날의 산행이라는 문장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마치 오래전 시집 제목 같기도 했고, 누군가의 일기 첫 문장 같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삶의 순간 중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 장면들은 늘 평범한 날에 찾아오곤 했다.
계절의 시작은 늘 그런 식으로, 조용히 우리 곁에 와 있었다.
산길은 가파르지도 않고 평탄하지도 않은, 적당한 굴곡을 가진 길이었다. 그것이 좋았다.
너무 힘들지도 않고, 그렇다고 지루하지도 않은 산책 같은 등산.
흙을 밟는 촉감이 생생하게 발바닥으로 전해졌고, 그 감각이 이상하리만큼 위안이 되었다.
조금 걷다 보니, 나무 사이로 햇살이 스며들었다. 그 햇살 아래 노랗게 피어난 개나리꽃 무리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자연은 정말 정직하다. 해가 들면 꽃은 핀다. 따뜻해지면 바람은 부드러워진다.
그리고 우리 마음도 그 리듬에 맞춰 천천히 가라앉고, 차오르고, 다시 살아난다.
누군가가 그랬다. 봄은 새싹이 피는 계절이 아니라, 우리가 다시 피어나는 계절이라고.
그 말이 너무 와 닿았다.
겨우내 안으로만 감춰왔던 감정들이 천천히 기지개를 켠다.
때로는 겁도 나고, 두렵기도 하지만, 이런 산속 풍경을 마주하면 ‘그래도 괜찮아’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산 중턱 즈음에서 마신 물 한 모금은 그야말로 생명이었다.
도시에서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청량함이 혀끝부터 목으로, 그리고 온몸으로 퍼졌다.
입안 가득 퍼지는 그 시원함은 단순한 갈증 해소 그 이상이었다.
마치 쌓여 있던 감정들까지 씻겨 내려가는 듯한, 내면의 정화였다.
산새들이 지저귀고,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고, 내 발소리가 흙 위에서 리듬을 타며 울려 퍼지는 그 소리는
하나의 자연의 합주곡처럼 들렸다.
그렇게 걷다 보니, 시간도, 고민도, 할 일도 모두 잊은 채로, 그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게 된다.

도심에서는 늘 다음을 걱정하고, 과거를 되짚느라 현재를 놓치기 쉬운데, 산 속은 지금만 존재하는 곳이다.
지금 이 자리, 이 풍경, 이 마음. 아무것도 필요 없는 이 순간이 오히려 가장 충만하게 느껴지는 아이러니.
개나리 피는 봄날의 산행은 내게 그런 깨달음을 주었다.
멋진 여행지도, 화려한 사진도 아니지만, 이 산길을 걷는 동안 나는 어느 때보다도 풍요로웠다.
몸은 조금 지쳤지만, 마음은 오히려 가벼워졌다.
길 끝에 다다라 잠시 멈춰 섰다. 뒤를 돌아보니, 아까 지나온 개나리들이 멀리서도 노랗게 반짝였다.
마치 나를 응원하듯 손을 흔드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작게 속삭였다. "고마워, 봄아."
우리는 때때로 ‘무엇을 해야 잘 사는 것인가’에 대한 답을 외부에서 찾지만,
정작 삶의 해답은 이런 순간들 속에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조용히 걷고, 느끼고, 마주하는 시간. 그것이 삶을 채우는 진짜 방식 아닐까.
오늘 하루도 그렇게, 봄날의 산길에서 한 걸음씩 나아가며, 내 마음에도 개나리 한 송이 피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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